[기고문] 1980년대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절규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찌르는 현재진행형 격언이다. 과거의 불평등이 투박한 ‘금력(金力)’에 의한 것이었다면, 현대의 불평등은 ‘권력’과 ‘진영’이라는 이름의 교묘하고 세련된 외피를 두르고 나타났다. 특히 최근 일부 권력층 재판에서 나타나는 검찰의 ‘항소 포기’ 행태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신호탄이다.
사법 형평성의 실종: 서민에겐 ‘추상’, 권력에겐 ‘춘풍’
현실 사법 체계의 이면은 냉혹하다.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평범한 서민들은 단돈 몇만 원의 합의금이 없거나 법적 대응 능력이 부족해 선처 없는 형량을 선고받고 판결에 순응한다. 반면, 막강한 권력과 화려한 변호인단을 거느린 이들의 재판 과정은 사뭇 다르다.
가장 기괴한 장면은 1심 판결 과정에서 그토록 서슬 퍼렇게 날을 세우던 검찰이, 정작 상급심의 최종적인 법리 판단을 구할 수 있는 ‘항소’라는 제도적 권리를 스스로 포기할 때 발생한다. 이는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앞둔 공격수가 갑자기 공을 경기장 밖으로 차버리고 경기를 종료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은 묻고 있다. 검찰의 손을 짓누르고 있는 그 ‘무거운 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선택적 정의’가 불러올 국가적 손실과 사법 신뢰의 붕괴
역사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영원할 것 같던 권력이 바뀌면 오늘의 ‘항소 포기’는 내일의 ‘진상 규명’ 대상이 될 것이다. 정치적 명분 아래 재판 기록이 다시 들춰지고 누군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것은 국가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신뢰이며, 그 피해는 오롯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평범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대한민국은 경제와 문화를 선도하는 선진국임을 자부하지만, 권력의 향배에 따라 사법 절차가 굴절되는 시스템을 방치한다면 우리의 사법 수준은 여전히 80년대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년들에게 비친 대한민국: ‘기회의 평등’인가, ‘줄 세우기’인가
사법 정의의 실종은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비친 대한민국은 노력하면 성공하는 나라가 아니라, ‘누구 편에 서느냐’가 운명을 결정짓는 불공정한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선택적 정의’는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아닌, 탈출하고 싶은 절망감을 심어준다. 공정한 사법 시스템 없이는 미래 세대의 지지와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법치는 권력의 시녀가 아닌, 정의의 보루여야 한다
법이 권력의 시녀를 자처할 때 법치는 죽는다. 검찰의 항소 포기는 단순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정의의 최후 보루가 무너졌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사법 당국은 엄중히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법의 저울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짐 없이 평평해야 하며, 법의 칼날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리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미래 세대에게 ‘유전무죄’라는 부끄러운 유산을 남기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사법 정의의 회복, 그것은 선택이 아닌 시대적 소명이다/국민의힘 경기도당 수석대변인 김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