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포커스】 실천 없는 결심은 통치가 아니다

- 공직자의 말과 행동 사이

“결심이 아니라 실천이 통치다. 국민은 말보다 결과를 기억한다.”
 

2025년 대한민국의 국정 운영이 새롭게 시작되었지만,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뀌는 인물이 아니라 “말뿐인 정치가 반복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곧 국가의 방향이며, 장관의 발표는 행정부의 약속이고, 고위 공직자의 결심은 행정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말’은 넘치고, ‘실행’은 자주 실종된다. “결정은 있었으나 행동은 없었다”는 말은 재난 대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 예산, 규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각종 선언은 화려했지만, 정작 실행으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그 간극은 결국 국민이 메우고, 그 대가는 시민의 삶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이 간극의 반복은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에서 비롯된다. 첫째, 보고 중심주의가 낳은 왜곡이다. 정책은 실적 중심 문서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종종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회의록에 불과하다. 둘째, 보신주의와 면피 문화가 낳은 무기력이다. “잘못된 판단보다 움직인 것이 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구조 속에서, 행동은 곧 리스크가 된다. 이로 인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셋째, 성과보다 연줄이 작동하는 인사 시스템이다. 실적보다 충성, 실행보다 정치적 연계가 중시되는 구조는 유능한 공직자를 소외시키고, 무사안일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현실은 ‘성공하는 공직자’가 아니라 ‘무탈한 공직자’를 양산하고, 결국 책임을 기피하고 시선을 의식하는 조직 문화를 고착화시킨다.

 

이러한 구조를 직시하지 않고는 아무리 대통령이 혁신을 외쳐도 실무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직자는 보고만 하지 말고, 판단하고 결정하라”고 반복해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남시장 시절 불법 계곡 정비, 보도블록 교체 중단 등은 단지 행정 조치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이었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실효성 있는 사업만 하라”는 지시는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태도이자, 행동하는 통치 철학이었다. 행정에서 중요한 것은 큰 말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며, 그 시작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으로부터 출발한다.

 

해외에서는 이 ‘실천 없는 결심’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은 2010년 이후 '공공서비스 실행 책임 프레임워크(Delivery Framework)'를 도입해 각 부처의 목표와 성과 지표를 구체화하고, 분기별 실행 성과를 평가하고 장관의 책무를 명확히 했다. 캐나다 '시민 중심 정책 실행 플랫폼'을 통해 시민이 직접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며, 프랑스'시민 권리청구제'를 통해 공직자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 시정 요구를 제도화했다. 이러한 사례는 단순히 제도 개혁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통치의 파트너가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우리도 바꿔야 한다. 첫째, 고위 공직자의 결심은 발표에 머물지 않고 실행계획과 후속 점검으로 연결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최소한 ‘100일 이행 보고’ 원칙을 도입하고, 이를 공공포털에 등록해 국민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일한 자가 인정받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평가 지표를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고, 면피성 보고서 대신 행동을 문서화한 실적보고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문서 포맷의 전환이 아니라, 책임의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셋째, 국민이 참여하는 ‘정책 실천 점검 플랫폼’을 운영해 각 부처의 약속 이행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민간의 피드백을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수행 공개 플랫폼’과 시민단체의 협업을 연계해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행정의 신뢰는 ‘말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정제된 워딩이라도, 그것이 현실에서 체감되지 않으면 국민은 냉소할 수밖에 없다. 조선 정조는 “군왕의 명이 실현되지 않으면 백성이 해석을 달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석이 달라지면, 신뢰는 무너지고, 정당성은 흔들린다. 통치는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천 없는 결심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