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포커스】 무릎의 의미

- 국민 앞에 선 대통령, 그 자세는 어디로 가는가

무릎을 굽힌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정신의 표현
 

 

2025년 6월 4일, 대통령의 취임 선서식 직후, 대한민국은 상징적이면서도 전례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국회 청소노동자들 앞에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이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단순한 예우 차원의 퍼포먼스로 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 그리고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한 사람”이라 일컬어온 그의 삶의 배경과 철학이 응축된 행위로 받아들였다.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아간 이들이 청소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자세를 낮춘 채 그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은 태도는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묻게 했다. 그것은 단순한 ‘소통’의 제스처가 아니라, 국민과 권력이 맺어야 할 관계의 모델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명확히 제시하는 하나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권력의 진정성은 ‘시작’보다 ‘지속’에 있다. 아무리 진심 어린 출발이라도 그 자세가 시간이 흐르며 흐려지고, 국민보다 권력 내부의 시선에 더 익숙해진다면, 초심의 감동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쓴소리 참모’의 존재다. 정조대왕은 “임금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을 거울 삼아 스스로를 비추는 자”라고 했다. 그는 늘 신하들의 상소문을 직접 열람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을 더욱 귀하게 여겼다. 실제로 ‘경연제도’를 적극 활용해 유학자들과의 토론을 통해 국정 운영의 방향을 점검했고, 자신의 실정을 지적하는 상소에도 포용으로 응답했다. 그에게 권력이란 오만의 상징이 아니라, 학습과 경청의 의무였다.

 

현대 정치에서도 이러한 자세는 국가의 품격을 가른다.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당선 직후 자녀와 같은 자세로 교단 앞에 무릎을 꿇고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며 “정치는 책상이 아닌 사람의 눈높이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이 결정한 정책의 오류에 대해 국민 앞에서 공식 사과한 몇 안 되는 정상 중 하나다. 또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 초기 대응 당시, ‘절대 권력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산다’며 매일 밤 10시가 넘도록 참모들과 브리핑 회의를 반복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국민을 향한 자세’를 유지하는 데에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들인 지도자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태도 역시 이러한 리더십의 계보에 서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다. 권력은 인간을 고립시키고, 참모는 권력자를 기쁘게 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지 대통령 개인의 철학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 곁에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 그리고 권력의 그늘을 직시할 수 있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이는 일시적 진정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한 통치 시스템의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해온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국정 철학은 바로 이 구조 위에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그가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했기에 누구보다 민생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자신을 가장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가장 약한 자의 입장에서 통치하라'는 말은 대통령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구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적 안전장치, 투명한 피드백, 그리고 국민과의 지속적인 눈맞춤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정치를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진이 보여준 '자세'는 앞으로의 5년 동안 이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는 있다. 무릎을 굽힌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국민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정신의 표현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메시지를 기억하자. 진짜 권력은 내려놓을수록 커지고, 자세를 낮출수록 국민 곁에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그 자세가 시작과 끝이 같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여정에 국민은 침묵의 방관자가 아닌, 가장 정확한 거울이자 끊임없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권력을 관리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진정 원하는 ‘함께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