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의 품격, 건강이 곧 품격이다ㅣ김한준 박사의 신중년 인생설계 (7)

-건강은 여가, 관계, 경제활동을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


 

“퇴직하면 여행 다니며 쉬고 싶다던 친구가 있었지. 그런데 막상 나오니 무릎이 아파 멀리 갈 수도 없더군.”

“맞아. 나도 시간은 많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아. 자유가 주어졌는데, 정작 쓸 수가 없는 거야.”

 

이 짧은 대화는 퇴직 이후 삶에서 건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이 많아도, 돈이 있어도, 건강이 무너지면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영국 철학자 칼라일은 “건강은 모든 행복의 토대이며,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도 사치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퇴직 이후의 품격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은 결국 건강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6세지만 건강수명은 66.8세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17년을 질병이나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만성질환 보유율은 88%를 넘어섰고, 치매 환자 수는 90만 명을 돌파했다. 건강을 잃으면 여가나 재무 설계는 빛을 잃고, 관계도 단절되기 쉽다. 결국 품격 있는 삶은 건강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준비가 부족하다. 재직 시기에는 건강검진을 받더라도 바쁜 일정 탓에 생활습관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퇴직 이후에야 늦게 운동을 시작하다가 무리해 부상을 당하거나, 이미 진행된 질환을 뒤늦게 발견하는 일이 잦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체계적인 건강 설계가 부족한 탓이다.

 

반대로 일찍부터 작은 습관을 들인 사례는 다르다. 노사발전재단 사례집에는 퇴직 전부터 아침 걷기를 습관화한 한 퇴직자의 경험이 소개되어 있다. 그는 걷기 모임에서 또래와 교류하며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고, 그 인연을 통해 봉사활동까지 확장했다. 몸을 관리하는 일이 곧 관계와 사회 참여로 이어진 것이다.
 


건강은 단순히 질병을 피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중장년층에게는 신체적 회복력뿐 아니라 정신적 안정도 중요하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퇴직 직후 우울감을 호소하는 중장년이 전체의 40%를 넘는다. 일과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면서 자기 존재감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명상, 글쓰기, 음악 같은 정서적 활동은 이런 공허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 〈사이드웨이〉의 주인공들이 와이너리 여행을 통해 일상의 권태와 상실감을 치유했던 것처럼, 마음의 회복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준다.

 

제도적 차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은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참여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역 보건소의 운동·영양 교실은 접근성이 낮고, 퇴직 세대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은 부족하다. 앞으로는 ▲퇴직 전 직장 단위의 건강 습관 교육 ▲퇴직 후 지역 사회와 연계한 운동·정서 관리 프로그램 ▲치매와 우울 예방을 위한 조기 개입 체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특히 지역 대학, 의료기관, 평생학습관이 연계하여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비용을 줄이고 참여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건강 검진을 넘어, 생활 속 건강 습관을 유지하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품격 있는 삶은 건강이 뒷받침될 때 유지된다. 재무가 안정돼도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면 삶은 제약받는다. 공동체 활동을 하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건강은 여가, 관계, 경제활동을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자 사회가 함께 보장해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작은 걷기 습관, 규칙적인 식사, 하루 10분의 명상 같은 단순한 실천이 퇴직 이후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고전 『동의보감』은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라고 했다. 먹는 것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야말로 퇴직 이후 삶을 지켜내는 첫걸음이다. 작은 습관을 오늘 시작할 때, 퇴직 이후의 자유는 두려움이 아니라 진정한 기회가 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기관, 중앙부처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