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연수원’으로 불리던 공무원 교육기관은 지금도 여전히 교과서와 강의실 중심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기술이 급변하고 국민의 행정 수요가 다변화하는 시대, 그 변화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공직교육은 오히려 가장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중앙부처 소속 공무원 교육기관’이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교육 대상과 방식 모두에서 과거의 틀을 반복하고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지금은 교육 그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지금의 공직교육은 공공정책 실행력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정책과 성과를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특히 다양한 행정환경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오늘날, 기존의 고정된 교육 방식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2025년 공무원 인재개발 종합계획은 '성과중심의 정책기여형 HRD'로의 전환을 제시하며, 단순 교과 편성이나 교수법 개선을 넘어 정책성과와 연계된 교육 설계체계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탄소중립, 국민 참여형 정책수립 등 새로운 행정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무원 역량개발의 접근법 역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직교육은 단지 이론과 절차 전달이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기획하는 설계력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성과에 기반한 공직 리더십을 형성하고, 정책 간 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성과는 여전히 현실에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 운영하는 교육과정 중 상당수는 집합교육 위주로 설계되어 있으며, 정책기획이나 디지털 리더십보다는 공직가치, 청렴, 직무기초에 초점을 맞춘 반복적 교육이 중심이다. 2025년 디지털역량 교육과정은 총 27개 과정, 78회 운영으로 1,705명 이수를 목표로 하지만, 단기 기술 습득 중심의 내용이 주를 이루며, 정책 기획 및 행정 혁신과의 연계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단지 내용의 문제만이 아니라, 평가방식과 실행 후 환류 구조가 부족하다는 구조적 제약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이 운영하는 신규 5급 이상 대상자의 기본교육 과정은 대체로 높은 이수율을 보이고 있으나, 교육 종료 후 실제 정책 현장에의 적용 가능성이나 효과를 분석하는 체계는 미비하다. 교육 피드백은 수료자 개인 만족도 조사 수준에 머무르며, 성과 중심의 교육성과 환류 체계는 여전히 부재하다. 이로 인해 공직교육이 정책설계역량을 배양하는 전략적 기능보다는 행정 절차 이수의 형식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해당 교육이 실질적으로 공무원 개개인의 정책집행력을 향상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와 사례 기반 연구도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민간 전문가, 정책 실무자,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협업 체계도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근 인재개발원은 민관협의체 및 글로벌 교육 파트너십 확대를 강조하고 있으나, 다수의 협의체는 사례 공유나 일회성 포럼 중심에 그치며, 실제 교육과정 기획 및 실행에 반영되는 구조는 미약하다. 이러한 협업 부재는 교육의 현장성과 실효성을 약화시키며, 전략적 HRD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흔들 수 있다. 특히 교육과정 설계 초기 단계부터 외부의 전문지식과 현장 수요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 교육 내용과 행정 현실 간의 괴리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인재개발원이 현재와 같은 운영 모델을 지속한다면, AI 전환, ESG 행정, 디지털 플랫폼 정책 같은 메가트렌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전문성 있는 교육 제공기관이 아니라, 공직사회 전체의 전략적 사고와 설계 역량을 촉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인재개발원은 이제 교육기관이 아닌 ‘정책 성과를 설계하는 거점’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행정혁신의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정 구조의 개편뿐 아니라, 교육 운영 전반에 걸쳐 전략적 실행과 환류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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