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었다. “더 이상 죽음에 책임이 없는 사회는 없다”는 외침 아래 시작된 이 법은, 산업현장의 반복된 참사를 막고 경영책임자에게 생명의 무게를 각인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시행 3년이 지난 지금, “법이 존재함에도 왜 죽음은 계속되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서의 변화는 분명 있었다. 고용노동부(2024)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은 2024년 기준 약 2만 7,000곳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처벌로 이어진 기업 수는 법 시행 2년간 70여 건에 불과하고, 기소된 경영책임자 수는 30명을 넘지 않는다. 이 통계는 법이 ‘존재’하지만, ‘작동’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원청이 안전관리의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하청과 재하청을 반복하며 법적 책임을 구조적으로 분산시켰다. 작업자 안전관리도 외주화 되고, ‘위험성 평가서’는 서류상 작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사고 발생 시 ‘형식상 의무 이행’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이 발표한 『대통령선거 이후 안전보건 체계 개편 방향』에서도 이러한 점이 언급된다. 보고서는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실질적인 책임 주체가 회피 가능하도록 구조화되어 있으며, 입증 책임 또한 피해자 측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라고 분석한다.
중소기업은 이 법의 사각지대에 더 깊이 놓여 있다. 2024년 기준 산업재해 사망자 중 72%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법 적용 대상 기업 수가 구조적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법의 적용 대상을 넓히지 않는 한, 가장 위험한 작업 현장은 계속 보호되지 못하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하청 노동자 보호와 발주자 책임 명문화'를 강조하며, 중대재해 방지 체계의 실질적 확대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바 있다.
또한 이 법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입증 책임’의 비대칭성이다. 현행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체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고 규정하지만, 그 이행 여부를 입증하는 자료 대부분은 사업주가 독점하고 있다. 반면 피해자나 유족은 사고 당시 조치나 관리 시스템의 부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감독 시스템의 부재 역시 이 법의 실효성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감사원이 2024년 산업재해 실태에 대해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 감독 체계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점검은 여전히 사후 조치 중심이며,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 감독 인력은 대상 기업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적 보완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일본은 ‘원청 절대 책임제’를 운영하여, 하청 구조와 무관하게 원청 경영자가 산업재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감독자 실명제’를 병행한다. 독일은 하도급 단계 제한, 공사비 원가 공개 의무제, 중소기업 안전 컨설팅 지원 등 공공과 민간의 안전 책임을 구조화하고 있다. 이는 법만으로는 생명을 지킬 수 없고, 법을 움직이는 ‘실행 구조’가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결국 우리는 법의 강화를 논하기 전에 ‘법의 작동’을 고민해야 한다. 첫째, 하청 구조를 악용한 책임 회피를 막기 위해 발주처와 원청의 절대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 둘째, 입증 책임을 공유하는 공적 조사기구를 설립하여 피해자와 유족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사망사고의 사회적 비용을 반영한 ‘생명단가 기준’을 제도화해, 기업 경영에 있어 안전이 선택이 아닌 비용 구조의 일부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2025년 7월, 인천 하수도 맨홀 사고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
이 말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조를 바꾸는 명령으로 작동하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반복되는 죽음을 멈추는 일은 더 이상 상징도, 추모도 아니다. 죽음을 막는 것은 실행이고, 생명을 지키는 것은 책임이다. 그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 책임은 더 이상 유족의 몫이 되어선 안 된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모든 관계 부처는 ‘특단의 조치’라는 대통령의 말이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법을 넘은 구조의 변화가 행정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다시 반복된다면, 그것은 사고가 아니라 방임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