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포커스】 하청의 끝은 죽음이었다

– 3중 하청의 비용 구조

 

 인천 굴포천 맨홀 안에서 노동자가 “가스가 있다”는 마지막 외침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뒤를 따라간 동료는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되었다. 이들의 작업 환경에는 기본적인 유해가스 측정 장비도, 안전 교육도 없었다. 더욱이 이 현장은 원청에서 재하청, 그리고 또다시 재재하청을 거쳐온, 이른바 ‘3중 하청’ 구조였다. 사망한 노동자가 일한 곳은 계약서상 어디에도 이름이 명확히 기재되지 않은, 비용의 끝자락에 놓인 ‘최종 수급자’의 작업장이었다.
 
 이는 예외적인 비극이 아니다. 건설, 플랜트, 지하 설비 등 위험한 노동이 필요한 산업 현장에서 이와 같은 3중 하청 구조는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재하청이 이루어질수록 안전은 멀어지고, 책임은 아래로만 전가된다. 발주처는 ‘직접 시공이 아님’을 이유로 책임에서 물러서고, 원청은 하청 계약서에 ‘안전 책임은 하청에게 있다’는 문구 하나로 면책을 시도한다. 그러나 위험은 결국 가장 낮은 곳에서 터지며, 그 대가는 목숨이라는 가장 고귀한 비용으로 치러진다.
 
 2025년 7월, 인천 계양구의 맨홀 안에서 벌어진 참사 사고로 밝혀진 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지리정보 구축사업은 지역 측량업체에 발주되었고, 이 업체는 사업을 비공식 하청 형태로 또 다른 소규모 업체에 넘겼으며, 결국 실제 작업을 수행한 기업은 대구에 있는 소규모 기술사무소였다. 이 같은 구조에서 사업 예산은 최초의 2억 8천만 원에서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실 작업자에게 지급된 공사 단가는 시장 평균의 60%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에 쪼인 구조는 필연적으로 안전을 희생시킨다. 가스 측정은 생략되고, 산소마스크 지급은 없었으며, 감독자는 현장에 없었다. 맨홀 아래에서는 국가의 법과 제도가 ‘도달하지 않는 영역’이 된 셈이다. 유사한 구조는 전국 곳곳에서 반복된다. 2023년 부산 해양배관 공사에서도 재재하청을 받은 소기업 소속 노동자가 질식사한 바 있으며, 당시 원청은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은 발주처 동의 없는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형식적인 계약 조항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감사원이 2024년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발주공사 안전관리 실태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10건 중 6건 이상이 실제 하도급 구조와 계약서상 구조가 일치하지 않았으며, 3중 하청 이상이 이뤄졌음에도 감독 당국은 이를 파악하지 못한 사례가 43%에 달했다. 즉, 제도는 있으나 실행이 없고, 감독은 있으나 실질이 없는 것이다.
 
 해외는 다르다. 독일은 하청 단계가 2단계를 초과하면 원청이 법적 책임을 전적으로 지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공 공사의 경우 계약 이력을 모든 단계에서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은 지방정부가 직접 노동감독관을 파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에는 원청 책임자 실명제를 도입해 책임 회피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효과적인 이유는 단순히 강한 처벌 때문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책임을 나눌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변화를 위한 단초는 존재한다. 2025년 국회에서는 발주처 1차 책임 명문화와 다단계 하도급 제한을 골자로 한 「산업안전책임강화법」 발의되었으나, 관련 이해관계자의 반발과 이견으로 계류 중이다. 더 늦기 전에 이 법의 취지를 살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공공 발주사업의 경우 하청은 최대 2단계까지만 허용하고, 그 이상은 금지해야 한다. 둘째, 공사비 원가 및 계약 이력을 단계별로 전자공개 시스템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해야 하며, 허위 기재 시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셋째, 발주처는 계약과 무관하게 안전사고 발생 시 1차 민형사 책임을 지는 구조를 법제화해야 한다.
 
 “가장 값싼 비용은 결국 가장 비싼 희생으로 돌아온다.” 이 말은 산업 현장의 현실을 관통하는 진실이다. 3중 하청의 구조는 단지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최종 시험대다. 이제는 묻지 말고, 바꿔야 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이름 없는 계약서의 맨 끝에서 일하고 있으며, 다음은 그가 될 수도 있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