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함께 읽는 詩 / 이병률] 방향의 감각

 

 

[편집국에서] 이병률(충북제천 1967~)은 서울 홍파초·성일중·경동고·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프랑스 유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좋은 사람들'로 등단했다. 1998년 MBC라디오 유희열의 음악방송, 이소라의 음악도시 등의 방송작가를 했다. 여행 산문집 '끌림'으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며 대중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등의 책을 출간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대시학 작품상, 발견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작 시집으로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가 있다. 아직 미혼이다.

 

 

※정도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자작시 포함)와 짧은 감상평을 보내주시면 소중하게 보도를 하겠습니다. 시인의 등단 여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편집국 

 

 

                         방향의 감각
                                    -이병률

 

어느 서점 책장 안쪽에서 마주친 오래된 마른 걸레
까만 먼지를 몸에 감고 마르다못해 뒤틀려 뒹굴고 있는 그것은
누가 하다가 그만둔 일일까

 

일을 하다가 이제는 더이상 일을 하지 않으려고 다짐을 하고
행주로 책장 사이를 닦다가 주인에게 다가가
다부지게 꺼냈던 말이

 

그만두겠어요
그만두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게도
걸레는 숨이 빠진 상태로 뭉쳐저 그곳에 쓰러져 있다

 

돌아올게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했느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의 위치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다시 책으로 엄중히 가려놓았다

 

내가 잘 떠나는지 지켜봐주세요
하고 걸레에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책 뒤의 구겨진 걸레는
먼 세계에서 날아온 공일지도 모르며
어떤 명령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만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걸레를 다시 꺼내
나라도 몰래 들고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침없는 빛줄기가
감옥을 파고드는 그 빛만 같아서
흠칫 놀라고 말았다

 

※ 언젠가 친구인 이병률 시인에게 그의 자작시에 대해 이건 무슨 뜻이냐며 필자의 의도나 감정을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인은 '그저 네가 받은 느낌이나 감정을 소중하게 갈무리 하면 될 뿐'이라고 말했었지요. 이 시 역시 그 범주안에서 읽혀집니다. 서점안 책장 깊숙이 마른 걸레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 걸레를 통해 사유의 숲을 거닙니다. 그러다가 마침 걸레를 향해 쏟아지는 한 낮의 빛을 통해 생의 빛줄기를 느낍니다. 그 빛줄기는 아마도 생의 목적이나 동기부여의 되새김일 수도 있고,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는 삶의 당위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마른걸레처럼 삶이 푸석하고 지저분해졌다 느끼고 있다면, 현실의 감옥에서 벗어나 물과 비누 등 여하한 생의 목표를 찾아 열심히 움직여야 겠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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