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말하고 듣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이 기도입니다

[최해선 장로의 기독칼럼-1] 한국기독실업인 경기북부연합회 회장

 

[최해선 장로의 기독칼럼]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청교도(스코틀랜드 기독교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존 낙스(종교개혁지도자, 1513~1572)의 말입니다. 당시 존 낙스는 이성과 감정에 호소하는 열정적인 설교자로 유명했는데, 그는 자신이 외치는 엄격한 청교도적 교리나 신조를 반드시 지키는 도덕적인 삶을 산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무엇이 그의 삶을 청교도 창시자의 길로 올 곧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요?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갯세마네 동산에서 우리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시고 계십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가복음 14장 37~38절). 갯세마네는 "기름짜는 틀"이란 뜻입니다. 기름을 짜기 위해선 식물의 형체가 완전히 망가져야 합니다. 실지로 예수께서는 땀을 흘리 듯 피를 흘리시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우리가 위로 올리는 기도를 하면 밑으로 내려오는 기도가 있습니다. 또는 밑으로 내려오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위로 올리는 기도를 합니다. 결국 기도는 위 아래의 대화입니다. 듣기 위해 혹은 들은 것을 분별하고 따르기 위해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입술의 말이 아니라 듣는 마음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들음을 행위로 실천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실행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은 무가치 무의미한 기도를 성도들과 나누지 않습니다. 기도 행위는 말하고 듣고 실행하는 전 과정을 말합니다. 

 

 말하고 듣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에는 각 사람의 분별이 필요합니다. 모든 기도는 겨자씨처럼 각 사람의 심령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씨앗을 꺼내 밭을 일구고 심는 행위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는 것도 우리 몫이며 의지입니다. 먼지처럼 작은 한알의 겨자씨가 큰 겨자나무를 이루는 것은 "밭을 골라 심고 물을 주고 가꾸는 우리 행위"에 있습니다. 각 사람의 달란트는 그 기도의 전 과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코로나19로 세계인 모두가 큰 환란을 겪고 있습니다. 국내만해도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와 교회, 그 무리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는 사회의 암적 존재입니다. 기도는 각 사람에게 영적 분별력과 굳은 의지를 깨달아 행하게 합니다. 행함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함을 통해 기도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