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상수 칼럼]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듣고 보면 이상하다. 우리는 모두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또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이보다 더 정확한 말도 없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은 평생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저절로 사람다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친구의 아픔을 알아보고,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면서 비로소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그래서 인생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크기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세상은 사람을 평가할 때 가진 것을 먼저 본다. 얼마나 공부했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진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것만이 아니다. 내가 힘들 때 말없이 곁을 지켜준 사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 내가 실수했을 때 등을 돌리지 않은 사람,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면서도 나를 먼저 생각해준 사람이 오래 기억된다.


돈이 많다고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배운 것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인격까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의 크기는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사람을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옛말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뜻의 여러 가르침이 있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사람을 잃고 얻는 성공이라면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은 주변에 따뜻한 흔적을 남긴다.

 

공자가 찾았던 사람
2500여 년 전 공자도 같은 질문을 붙들었다. “사람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공자는 그 중심에 인(仁)​을 놓았다. 『논어』에서 인을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도 남겼다. 짧지만 평생 실천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말이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내가 상처받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내 입장만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사람다움은 어쩌면 이런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공자가 말한 군자도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알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가장 이기기 어려운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남의 욕심은 잘 보이는데 내 욕심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남의 잘못은 크게 보이는데 내 잘못은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싶어진다. 남에게는 원칙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예외를 허락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남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의 욕심과 교만을 이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참사랑은 사람을 만드는 힘이다
이 질문을 참사랑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사랑은 머릿속에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상대를 위하고, 먼저 주고,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결국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말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을 삶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말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용서를 말하면서 오래된 원한을 품고, 정의를 말하면서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쉽게 침묵한다면 아직 사람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고,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다. 사랑은 말보다 행동에서 드러난다. 사람의 됨됨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무엇보다 양심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즘은 아는 것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시대가 아니다. 정보는 넘쳐나고 목소리도 넘친다. 오히려 너무 많은 말 속에서 자기 마음속의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남의 잘못에는 민감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다. 남에게는 원칙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이유를 붙인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옳은 일 앞에서도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나 사람의 마지막 보루는 양심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손해를 보면서도 약속을 지키는가. 잘못했을 때 변명보다 사과를 먼저 하는가. 힘없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가. 사람의 진짜 모습은 박수받는 자리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더 잘 드러난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판단하는 사람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을 때는 세상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지만, 인생을 살아갈수록 사람마다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보이지 않던 상처가 보인다. 그래서 사람이 깊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남을 판단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이 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공부에는 졸업이 없다
학교 공부에는 졸업이 있지만 사람 공부에는 졸업이 없다. 젊어서는 성공하는 법을 배우고, 나이가 들면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많이 가졌을 때는 나누는 법을 배우고, 상처를 받았을 때는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인생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느냐보다 얼마나 사람답게 살았느냐를 돌아보게 된다. 공자의 인(仁)과 참사랑의 가르침은 시대와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한곳에서 만난다.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따뜻해지고, 정직한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정직해진다. 누군가의 작은 친절 하나가 하루를 바꾸고,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을 바꾸겠다고 너무 큰 것부터 찾을 필요는 없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는 것, 가족의 말을 한 번 더 들어주는 것, 힘든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잘못했을 때 변명하지 않고 사과하는 것,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것이 사람이 되는 공부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내 뜻이 아니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우리는 평생 돈을 벌고 지식을 쌓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겨놓은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는 것.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지”라는 한마디를 남길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훈장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지금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아직 부족하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사람이 되는 데 늦은 때는 없다. 먼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첫 공부이고 마지막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