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파도를 없앨 수 없다면 배를 키워라

 

 

[기고문 / 이상수 박사] 사람은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나보다 내 몸을 더 잘 안다는 전문가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청진기 끝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와 정밀한 수치로 치환된 혈액 분석 결과는 객관적 안도를 준다. 그러나 마음의 병, 혹은 삶의 근원적인 흔들림 앞에 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상 그 어떤 명의(名醫)도 내 마음의 깊은 결까지 대신 진단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지만 희로애락의 뿌리를 가장 정확히 응시하고 있는 것은 타인의 진단서가 아니라, 내 안의 깊은 양심과 직관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파도는 찾아온다. 크고 작은 높낮이의 차이는 있을 뿐, 근심과 걱정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기본 조건이다.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 인간사에서 고난이 들이닥치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도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파도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어떤 이들은 파도가 밀려오면 거대한 장벽을 만난 듯 두려움에 사로잡혀 뒷걸음질 친다. 상황을 탓하고 운명을 원망하며, 몰려오는 물결을 피해 자신을 더 작고 안전한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파도를 피하려는 선택은 당장의 젖음을 면하게 해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비겁한 안도는 결국 삶의 영역을 위축시키고, 나아가야 할 항로 자체를 폐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대로 그 거친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왜 이 파도가 지금 나에게 이토록 거세게 다가오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육체의 병이 그 발생 원인을 정확히 찾아야 비로소 치유의 길로 들어서듯, 삶의 요동 또한 그 근원을 직시할 때 비로소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고난의 뿌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균열, 혹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결핍에 닿아 있다. 이를 외면하면 파도는 형상을 바꿔가며 평생 반복되지만,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은 열린다.

 

여기서 인생의 격차가 벌어진다. 포기하는 사람은 파도를 오직 ‘재난’으로만 해석하지만, 이겨내는 사람은 그것을 내면의 정체(停滯)를 깨우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전자는 상황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객체로 남고, 후자는 상황을 도구 삼아 자신을 단련하는 주체가 된다. 바람이 거셀수록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고목처럼, 시련이 클수록 내면의 기둥을 단단히 세우는 법이다. 그들은 근심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기보다, 그 근심을 넉넉히 받아낼 ‘그릇’을 키우는 쪽을 택한다.

 

결국 인생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용적(容積)이다. 같은 파도 앞에서도 누군가는 난파하고, 누군가는 그 파도의 높이를 이용해 서핑하듯 앞으로 나아간다. 배가 작으면 작은 물결도 생존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지만, 배가 크고 견고하면 거친 폭풍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항로를 잃지 않는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본질은 파도를 잠재우는 요행이 아니라, 어떤 파도 위에서도 부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배를 건조하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파도는 친다.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생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 파도를 핑계 삼아 멈춰 설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디딤돌 삼아 더 넓은 대양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오직 각자의 몫이다.

 

파도를 피하지 않고 마주 설 때, 위기는 더 이상 파괴적인 힘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다음 단계의 인간으로 밀어 올리는 강력한 추동력이 된다. 오늘 밀려온 시련의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신의 배를 키우는 사람만이, 비로소 내일의 드넓은 바다를 온전히 건너갈 자격을 얻는다. 삶의 파고를 넘어서는 힘은 밖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의 단단한 중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