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박사 칼럼] 정치의 본질은 봉사

 

 

 

거대 양당의 6월 3일 지방선거 공천을 지켜보며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 옛사람들은 정치를 일컬어 '바를 정(正)'이라 했다. 공자(孔子)는 안연(顔淵)이 정치를 묻자 "정치란 바로잡는 것(政者正也)"이라고 단언했다.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백성이 백성다울 때 비로소 정치가 바로 선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못해 시리다. 당리당략(黨利黨略)의 깊은 늪에 빠져 국민을 볼모로 삼고, 민생의 고통을 정쟁의 도구로 소모하는 작금의 현실은 정치가 '바름'을 잃고 끝없는 '탐욕'으로 변질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현보(李賢輔)는 관직에서 물러나며 "정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지, 결코 법령에 있지 않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번듯한 옷을 입고도 국민의 냉소를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치는 애초에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법을 만들고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다루는 이의 마음가짐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제도를 갖추고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 제도를 움직이는 동력이 '사람'이 아닌 '권력'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권력을 '신독(愼獨)'의 자세로 대했다. 홀로 있을 때도 스스로를 삼가며, 자신에게 부여된 힘이 결코 제 것이 아니라 백성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임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어떠한가. 권력을 쥐는 순간 그것을 누려야 할 사유물(私有物)로 여기고, 반대파를 궤멸시키거나 제 세력을 불리는 무기로 휘두르기 바쁘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권력은 결국 타인을 지배하려 들고, 그 순간 정치의 본질은 흐려진다. 권력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책임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정치는 봉사가 아니라 군림이 되고, 정치의 출발점인 양심은 실종되고 만다.

 

정치의 목적지는 더욱 명확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의 유지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지키는 데 있다. 정책이 아무리 정교한 수치로 포장되어도, 시장 바닥에서 한숨짓는 서민의 고단함이 덜어지지 않는다면 그 정치는 길을 잃은 것이다. 특히 힘없는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정치는 아무리 화려한 성과를 내세워도 공허할 뿐이다.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백성을 위해 관리가 있는 것이지, 관리를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던 그 서슬 퍼런 경고를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청렴은 정치의 기본이자 최소한의 도리다. 사사로운 이익이 개입되는 순간 공정은 무너지고, 공정이 무너지면 신뢰는 사라진다. 신뢰를 잃은 정치는 모래 위에 세운 성과 다르지 않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타협 하나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균열로 번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정치는 갈등을 이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갈등을 줄이는 책임이어야 한다. 갈등을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방식은 쉽고 달콤하겠지만, 그 대가는 공동체의 회복 불가능한 분열이다. 정치는 편을 가르는 칼날이 아니라, 찢어진 마음을 이어 붙이는 바늘이어야 한다.

 

결국 바른 정치는 거창한 구호나 복잡한 담론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 즉 '염치(廉恥)'를 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절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측은지심, 그리고 작은 사익보다 큰 공익을 선택하는 용기 말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정치에는 온기가 생기고 국민의 숨통이 트인다.

 

정치는 멀리 있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고단한 삶 한가운데 있는 실체다. 그래서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정치는 과연 사람을 향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꿔야 할 것은 낡은 제도 이전에 정치를 대하는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