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우리는 누구를 남기는가

 

 

 

[이상수 칼럼]

 

갓끈을 낚아채는 도파민의 시대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우리는 매일같이 누군가의 '갓끈'을 찾아내어 뜯어발기는 가혹한 광풍을 목격한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 실수, 연예인의 과거 사생활, 기업인의 작은 착오나 타인의 연약한 허물은 찰나의 순간에 알고리즘을 타고 퍼져 전 국민적 단죄의 대상이 된다. 흠을 잡고, 파헤치고, 한 사람의 인격을 완전히 매장하는 데 온 사회가 가공할 만한 도파민을 분출하는 시대다. 누군가를 바로 세우기보다 끌어내리는 일에 더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성찰이 절실한 시점이다.

 

'갓끈'을 낚아채는 도파민의 정치와 캔슬 컬처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법적 판단이나 이성적 검증에 앞서 대중적 단죄가 먼저 이루어지는 '사적 심판의 일상화' 속에 살고 있다. 사이버 렉카와 SNS는 타인의 인격적 치부를 상품화하고, 대중은 이에 열광한다. 상대방의 논리와 정책을 검증하는 성숙한 토론은 사라지고, 오직 상대의 약점과 실수를 찾아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주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정치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회와 정당은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정책의 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과거와 허물을 들춰내어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는 사학격검(私怨擊劍)의 링으로 변질되었다. 타인의 허물을 찾아내는 일에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관용을 베풀거나 사과를 수용하려는 시도에는 "왜 감싸느냐", "원칙 없는 타협이다"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용서는 약함의 상징으로 비하되고, 포용은 신념의 부재로 오해받는다. 허물을 찾아내는 눈은 날카로워졌지만,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따뜻한 손길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셈이다.

 

법주의(法主義)를 넘어선 사람의 지혜
약 2,600년 전,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의 연회장에서 일어난 사건은 지금의 우리에게 가슴 깊은 질문을 던진다. 승전을 축하하는 술자리가 한창이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다. 어둠을 틈타 한 신하가 왕이 애지중지하던 후궁을 희롱했다. 후궁은 순간 범인의 갓끈을 잡아채 뜯어내고는 장왕에게 외쳤다. "불을 밝혀 갓끈이 끊어진 자를 찾아 엄벌에 처하소서!"


엄정한 법과 원칙에 따른다면 범인을 즉시 가려내어 참형에 처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장왕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불을 켜기 전, 명을 내렸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신하는 스스로 갓끈을 끊어라. 갓끈을 끊지 않는 자는 즐겁게 연회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촛불이 다시 켜졌을 때, 신하들의 갓끈은 모두 끊어져 있었다. 장왕은 한 사람의 치기 어린 허물을 단죄하여 좌중을 공포에 빠뜨리기보다, 그날 연회에 참석한 공신 전체의 명예와 마음을 지켜주는 길을 택했다. 몇 해 뒤, 초나라가 치명적인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포위되어 장왕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진을 뚫어 왕을 구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바로 그날 어둠 속에서 갓끈이 뜯겼던 장수 웅양거(雄揚巨)였다.


"인간은 찬서리 같은 처벌에 감복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수치를 품어준 엄숙한 신뢰와 관용 앞에 평생을 바친다. 기둥만 있고 뿌리가 없는 건물은 오래 버티지 못하듯, 엄정한 법률이 사회의 기둥이라면 관용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인간성의 뿌리다.“

 

나와 우리의 '단죄 본능'을 말하다
우리는 타인의 가혹함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 역시 누군가의 갓끈을 집요하게 붙잡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세상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펴면,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한다"는 격언처럼, 경직된 사회의 모습은 결국 우리 개개인의 뾰족한 언어와 잣대가 모여 만들어진 결착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아이나 배우자의 실수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며 들추는가. 직장에서 후배의 한 번의 실패를 얼마나 쉽게 능력 전체의 결함으로 치부하는가. 내 잘못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이라는 너그러운 잣대를 대면서, 남의 잘못에는 '인격적 결함'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가. 정치가 거칠다고 혀를 차기 전에 나의 SNS 언어는 부드러운지, 지도자가 품어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기 전에 나는 당장 내 곁의 사람 하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적이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관용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기업 문화에서는 어느 누구도 혁신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다. 잘못에 대한 가혹한 책임을 먼저 묻는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오직 책임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하게 된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제거하는 데 골몰하는 정치는 결국 국민에게 선택할 수 있는 인재를 빼앗아 버린다.


인재는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믿어줄 때 뿌리를 내리고, 실수를 통해 배우며 기다려줄 때 비로소 거목으로 성장한다. 완벽한 사람, 흠 없는 인간만을 찾아 헤매는 사회는 결국 아무도 남지 않는 고사(枯死)의 길로 접어든다. 흠이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단지 아직 걸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사회에는 도전에 대한 열정 대신 몸을 사리는 사리사욕만 남게 된다.

 

갓끈보다 사람을 남기는 능동적 반성
장왕이 그날 지킨 것은 갓끈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자존심이자 마음이었고, 나아가 국가의 미래였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얻은 지도자는 결국 침몰해 가던 역사를 바로 세웠다.


사회를 바꾸는 첫걸음은 거창한 제도적 개혁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느끼는 쾌감보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서 오는 보람을 선택하는 '마음의 방향 전환'에 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허물 하나를 더 기억했는가, 아니면 한 사람의 가능성을 가슴에 품었는가." 공동체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잘못을 고발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다시 일으켜 세웠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이 아무리 타인의 갓끈을 낚아채라 부추길지라도, 우리는 마땅히 사람을 남기는 길을 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