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만물(萬物)을 주관하는 그릇”

 

 

 

[이상수 칼럼] 

 

비 걱정의 굴레와 부러움이라는 가면
장마철 비는 당연한 하늘의 이치건만, 인간의 마음은 날씨 하나에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제만 해도 가뭄을 걱정하며 텃밭 곡식에 조롱으로 물을 주었는데, 막상 아침 출근길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니 이번에는 비 피해가 앞선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오지 않으면 오지 않아서 걱정이다. 이렇듯 인간의 걱정이란 늘 나를 떠나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 그림자처럼 동행하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걱정은 대부분 '부러움'이라는 돋보기에서 시작된다. 내 손에 쥔 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작아 보이고, 남의 손에 들린 것은 유독 커 보이는 심리 말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 마음은 매한가지다. 다만 어른은 체면이라는 두꺼운 가면 아래 이를 묻어두고 태연한 척할 뿐이다. 막상 부러운 것을 다 이룬 이들에게 물어보면 공통적인 대답은 "별것 없다"는 싱거운 독백이다. 죽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할 부러움의 잔재들을 붙잡고 우리는 왜 이토록 서성이는가. 인생 갑자(甲子)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여전히 부러움에 눈이 멀어 하늘 앞에 가져갈 이렇다 할 '인생 실적'이 없음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공수래공수거가 아닌 '사랑의 이윤'을 남기는 삶
예부터 현인들은 인생을 두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의 물리적 법칙일진대, 심정(心情)의 궤적으로 보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결코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태어남 자체로 부모에게 빚을 졌고, 자연 만물에 빚을 졌으며, 하늘 앞에 거대한 빚을 지고 이 땅에 왔다. 살아온 모든 세월이 온통 '덕분'이라는 사랑의 빚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인생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라, 거대한 '사랑의 빚'을 짊어지고 왔다가 갈 때는 '사랑의 실적'을 남기고 가는 영적 여정이어야 마땅하다. 그 빚을 다 갚고 조금이라도 사랑의 이윤을 남기고 가기 위해, 우리의 숨 가쁜 생은 오늘도 이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선하게 사는 사람, 타인을 위하여 사는 사람, 그리고 하늘과 깊은 정이 든 사람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인생의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비로소 철이 드는 모양이다. "올 때는 혼자 울었지만 갈 때는 모든 이가 울 수 있는 사랑의 이익을 남기는 삶." 세상이 좁다 하고 온 사방을 누볐지만, 결국 내 속의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가 모든 가치를 결정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다.

 

주관하느냐, 주관당하느냐의 가치 척도
결국 핵심은 내가 나를 '주관(主管)'하느냐, 아니면 주관 '당하느냐'의 싸움이다. 마음이 주관하면 선(善)이 되고, 몸의 욕망이 주관하면 악(惡)이 된다. 물을 잘 주관하면 배를 띄우고 즐기지만, 물에 주관을 당하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 법이다. 불을 주관하면 문명을 발전시키지만, 주관당하면 모든 생명을 앗아가는 화마가 된다. 현인들이 만물을 주관하라 한 뜻도 이와 같다. 현대 사회는 모든 가치의 척도를 '돈'에 두기에, 만물은 곧 돈으로 수렴된다.


돈 역시 내가 주관하느냐, 돈에 주관당하느냐에 따라 품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돈이 내 재산의 축적 자체이자 목적이 될 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추(醜)한 세속의 덩어리가 된다. 그러나 돈을 의(義)와 사랑의 거룩한 '수단'으로 삼을 때, 돈은 최고의 예술이자 철학이며 인격이 된다. 성속(聖俗), 미추(美醜), 귀천(貴賤)은 사물 자체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가치 실현의 수단이 될 때는 성스럽고 귀한 것이 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간을 지배할 때는 천하고 추한 것이 되는 이치다.

 

마음의 그릇을 키워 만물을 품는 법
우리가 수행(修行)하고 마음의 그릇을 키우려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의 물질과 욕망에 주관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자연의 바다처럼 모든 것을 다 품어 안는 커다란 그릇이 될 수 있을까. 성인들이 우리에게 주문한 삶의 방식은 명확하다. 나를 비워 타인을 품는 '위하는 삶'의 실천이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먼저 베풀고 품을 때, 내 마음의 그릇은 무한히 넓어져 비로소 돈도, 만물도, 내 감정까지도 온전히 주관할 수 있게 된다. 만물을 내 소유로 묶어두려 하지 않고 사랑의 이윤을 남기는 수단으로 흘려보낼 때, 우리는 비로소 환경에 주관당하는 노예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당당히 경영하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참된 경영, 나를 비워 만물을 주관하라
결국 이 칼럼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엄중한 메시지는 하나다. "내 삶의 고삐를 쥐고 흔드는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면서 만물을 돈으로 바꾼 채 그것을 쫓느라 정작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잃어버렸다. 돈과 물질에 주관당하는 삶은 아무리 손에 쥔 것이 많아도 결국 접시 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허망하고 세속적인 삶으로 전락할 뿐이다.


성인들이 우리에게 일관되게 주문한 삶, 그리고 인생의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참된 가치는 만물을 내 것으로 소유하는 탐욕에 있지 않다. 오히려 내 마음을 바다처럼 넓혀 타인을 위해 베풀고, 하늘의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거룩한 '수단'으로 나를 경영하는 데 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온전히 주관할 때, 돈은 추한 집착이 아니라 고결한 인격이 되고 예술이 된다.

 

올 때는 세상의 모든 축복과 사랑의 빚을 지고 혼자 울며 왔지만, 갈 때는 내가 남긴 사랑의 실적과 이윤 덕분에 모든 이가 눈물로 아쉬워하는 삶—이것이야말로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만물을 온전히 주관하며 살아낸 인생 최고의 예술가이자 진정한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내 속의 마음 하나 잘 먹는 것, 그것이 만물을 품고 주관하는 위대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