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허물을 내 것으로 품는 성찰
연일 쏟아지는 폭우와 무거운 습기가 온 대지를 짓누르는 장마철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궂은 날씨는 육신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일상의 걸음을 무겁게 만들기 마련이기에, 이 고단한 계절일수록 스스로의 건강을 살피는 지혜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현대인들을 더욱 지치고 아프게 하는 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답답한 현실이다. 장마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걷히기 마련이지만, 공동체를 덮은 정서적·정치적 장마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 전반은 민감하게 날이 서 있다. 언론과 정치권은 물론 대중의 시선까지도 모든 사안을 오직 ‘좌와 우’, ‘내 편과 네 편’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으로만 재단하려 든다. 상대방의 주장은 무조건적인 거부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우리 편의 허물은 어떻게든 합리화하며 덮으려 급급하다.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 공동체에 진정으로 유익한 방향이 무엇인지는 이미 변두리의 문제로 밀려난 지 오래다.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며 비난을 퍼붓는 소리만 가득한 지금, 사회는 서로를 치유하고 통합하는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채 깊은 갈등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현상적인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 본연의 숭고한 가치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격렬하게 요동치더라도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내면의 중심, 즉 ‘양심’과 ‘책임’의 원칙을 복원하는 것만이 이 해묵은 갈등의 장마를 끝내는 유일한 열쇠다.
상처를 치유하는 위대한 속죄법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갈등과 대립의 뿌리에는 언제나 ‘네 탓’을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과 대자연의 깊은 섭리가 인간에게 가르쳐 준 진정한 해결책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참된 평화와 화해는 대상의 허물을 내 것으로 바꾸어 끌어안고 스스로 책임지는 마음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인류 역사 속에서 보편적 사랑을 실천했던 성인들은 늘 딱하고 가여운 대중을 바라볼 때, 그들의 허물을 비난하기보다 긍휼과 눈물을 머금고 ‘내가 더 사랑하지 못했구나, 나의 부족함이구나’ 하며 하늘 앞에 스스로 사죄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속죄다.
가정에서의 작은 예만 보아도 이 원리는 명백해진다. 자식이 밖에서 실수를 하거나 속을 썩일 때, 부모가 그저 신경질을 내고 다그치기만 한다면 갈등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식의 허물을 부모로서 책임지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참된 부모는 자식의 무거운 허물을 보며 ‘내가 부족했구나, 내 잘못이구나’ 하고 자신의 가슴을 치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네 죄는 곧 나의 죄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심정의 극치이자, 인간관계의 얽힌 실타래를 근본적으로 녹여내는 우주의 법칙이다.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 사람 역시 생명의 근원 되시는 대자연과 하늘이 낳은 소중한 자녀다. 타인의 실수를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부모의 심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의 허물을 불쌍히 여기고, 내가 대신 책임을 지고 해결해 주고자 하는 애달픈 사랑이 내 마음에 차오를 때, 비로소 상대방의 죄도 청산되고 내 마음의 응어리도 함께 녹아내린다. 그때 비로소 인간의 인격은 정신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법이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가장 강력한 자가 치유
우리는 흔히 용서를 상대방을 향한 시혜나 양보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그저 "괜찮다"고 맹목적으로 덮어주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단순한 화해가 아니다. 용서는 나에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 품고 있던 분노, 원망, 복수심이라는 무거운 감정의 사슬을 내 안에서 스스로 내려놓는 고귀한 내면의 결단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 혼자서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자가 치유의 작업이다. 상대가 끝내 사과하지 않아도, 심지어 그 사람이 내 곁에 없거나 세상을 떠났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완벽하게 용서할 수 있다. 타인의 실수를 내 안의 넓은 품으로 안아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에 대해서도 관대해지며 한층 더 단단하고 성숙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어 행동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잘못이 내 마음속에 만들어 낸 ‘고통의 감옥’에서 나 자신을 영원히 해방하는 가장 강력한 치유법이다. 미움과 분노를 품고 사는 것은 마치 내가 독약을 마시면서 상대가 쓰러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불타는 미움은 결국 상대가 아닌 내몸과 영혼을 가장 먼저 망칠 뿐이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엄숙한 진실은, 이 세상에서 행하는 그 어떤 크고 작은 일이라도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이 움직이는 모든 발걸음에는 대자연의 거대한 섭리와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늘의 거룩한 개입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홀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대우주의 거대한 생명력과 동반하여 숨 쉬고 움직이는 존엄한 존재다. 이처럼 하늘이 나와 늘 함께 호흡하며 움직이고 계신다는 엄연한 사실을 삶의 매 순간 뼛속 깊이 느끼고 체휼하게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어떤 고난 앞에서도 외로워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신앙과 인생철학을 확립할 수 있다.
중심을 잡고 본연의 길로 걸어가자
장마철의 흙탕물이 아무리 거세게 흘러도 시간이 지나면 강바닥은 다시 맑은 물을 걸러낸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소란과 이념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좌와 우라는 좁은 안목에 갇혀 서로를 난도질하는 자해 행위를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상대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내 책임은 없었는가’를 먼저 돌아보는 서늘한 양심이 회복되어야 할 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내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만용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부모의 심정으로 품어 안으려는 따뜻한 포용력이다. 삶의 길에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고, 거친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내 마음속 웅크린 미움을 내려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와 동행하며, 주변의 허물을 나의 부족함으로 채워주는 평안하고 숭고한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