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일보 인터뷰]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의 삶이 감사해요”
화성시 만세구보건소 최병숙 보건정책팀장, 내년 남편과 함께 명예퇴직…30여년 공직의 길 돌아보다
[인터뷰] 대한민국에는 세상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공직자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며, 때로는 국가적 재난의 최전선에서 밤을 지새우는 공무원들이다. 화성시 만세구보건소 최병숙(59) 보건정책팀장도 그런 공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편집자 주 내년이면 남편인 경기도 광주시 관내 보건소 근무 공무원과 함께 명예퇴직을 앞두고 있는 최 팀장은 지난 30여 년의 공직생활 동안 감염병 대응부터 취약계층 지원, 공공보건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해 왔다. 특히 메르스와 코로나19 등 국가적 감염병 위기 때마다 현장에 투입돼 밤낮없이 대응했고, 공공심야약국과 호스피스 완화케어사업 등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동료 공직자들은 최 팀장을 두고 “어떤 부서에 있든 조직의 상하 간 조화와 화합에 큰 힘이 되는 사람”, “시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공무원”이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최 팀장은 매년 업무수첩 첫 페이지에 스스로에게 보내는 다짐을 적어놓고 한 해를 시작한다. “나는 공직자로서 스스로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국민들에게 친절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처리하겠습니다.” 그의 30년 공직생활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이 한 문장이었다. 다음은 최병숙 보건정책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보건계열 공직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게 됐습니까?"병원에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던 중 공무원인 남편의 권유로 미래가 보장된 직업을 가져보자는 생각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서하고 임용장을 받던 날은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받는 업무수첩 첫 페이지에 지금도 같은 글을 붙여놓고 한 해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공직자로서 스스로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국민들에게 친절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업무를 처리하겠습니다.”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품었던 초심을 마지막까지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Q. 부부가 함께 공직생활을 해오셨습니다. 두 분의 첫 만남과 결혼,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어떻습니까?"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초등학교 친구를 통해 남편을 만났습니다. 동갑내기이고 같은 지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했습니다. 무엇보다 선한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두 번째 만남에서 부모님 댁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저와 남편은 발안에서 남중과 여중을 졸업했습니다. 스무 살 중반, 하얗게 눈이 내리던 1월에 발안성당에서 결혼했습니다. 첫사랑과 결혼한 그날이 제 인생에서 첫 번째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30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은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준 사람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남편의 장점이 자연스럽게 제 것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남편은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리는 날이 많습니다. 업무적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게 많은 조언과 제언을 해줍니다. 함께하면 할수록 더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사람입니다." Q. 친절공무원으로 지역주민들의 칭찬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 종교적인 신념이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공직자로서의 사명감과 종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신앙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은 성경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나눔, 섬김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살아가도록 배웁니다. 저는 사람은 사랑할 때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이상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기업처럼 영업이익과 같은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업무를 소홀히 한 적은 없습니다. 항상 시민을 대할 때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시민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했는가?’ 그리고 하루하루 제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보건소에서 건강 취약계층을 위해 일하고 난 뒤 찾아오는 보람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제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해줬습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격리됐던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병가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늘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생활했던 것이 건강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부드러운 친화력으로 시민 편익을 우선시하는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보건업무를 통해 시민들에게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오랫동안 발안에 있는 보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은 농촌 어르신들과 외국인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취약계층이나 질병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지원하기 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특히 성병에 대한 무지로 감염되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접하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검사와 예방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성병 그린검진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무료로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2015년 메르스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감염병 담당자로 화성시 전역의 민원을 전화기 3대로 상담했습니다. 2주 동안 보건소 쇼파에서 쪽잠을 자며 업무를 이어갔습니다. 관내 병원에서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는 과장님과 직원, 세 명이 함께 화장장까지 모시고 가 가족들과 함께 장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2020년 동탄출장소 위생관리팀장으로 발령받은 지 한 달 만에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이 발생했습니다. 과거 6년여 동안 감염병 업무를 담당했던 경력 때문에 코로나19 대응TF팀장으로 갑작스럽게 발령을 받고 다시 보건소로 복귀했습니다.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3일 동안 밤을 새워 대응했고, 보건소 1층 모자보건실 바닥에 이불도 없이 쪼그리고 앉아 3시간 정도 눈을 붙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환자 발생은 계속됐습니다. 매일 새벽, 출근을 위해 차에 올라타면 밤새 맺힌 이슬을 와이퍼로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확진자가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위해 한 시간씩 전화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메르스 당시 행정전화로 상담하다가 긴급한 환자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때는 50번 확진자까지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확진자와 가족, 접촉자들은 급한 일이 생기면 24시간 저와 바로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100일 백서 제작팀에 보건소 대표로 참여해 백서를 만들었고, 동탄 예방접종센터를 설치할 때는 시민들이 최대한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동선을 고려해 직접 배치 도면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AI, 메르스, 코로나19 등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 전진 배치돼 격무를 담당했습니다. 물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2023년에는 의약무팀장으로 전국 최초의 화성형 공공심야약국을 추진했고, 헌혈 장려사업의 하나로 헌혈자 인센티브 지원사업도 추진했습니다. 2025년 지역보건팀장으로 근무하면서는 젊은 말기암 환자의 의료비 지원 신청서를 접한 것을 계기로 다음 해 말기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케어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집중관리군과 중증장애인 등 반드시 지원이 필요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방문사업도 진행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했던 일 하나하나가 결국 사람을 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내년이면 남편분과 함께 퇴직을 맞게 됩니다. 퇴직 후에는 어떤 삶을 그리고 계십니까?"저희 부부 모두 화성이 고향이고 현재 시부모님께서 화성에 살고 계십니다. 주일이면 내려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퇴직 후에는 시부모님이 계신 집 2층으로 이사할 계획입니다. 퇴직 후 1년간의 공로연수 기간에는 분명한 목표를 세워두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부모님도 차량 봉사를 받고 계십니다. 그래서 퇴직하면 마을에 계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차량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매일 함께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오후에는 마을센터에서 탁구, 요가, 수영 등을 하며 건강도 관리하고 싶습니다. 피아노와 캘리그라피도 배우려고 합니다. 나중에 봉사활동을 할 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성병 그린검진을 만들고 매년 200여 명의 대상자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심리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공무원 부부로 감사하게도 연금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퇴직 후에는 인근 복지관 등에서 재능기부 상담사로 봉사하는 삶도 살아보고 싶습니다. 공직을 떠난다고 해서 사람을 향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니까요." Q. 퇴임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동료·선후배 공무원들과 화성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저는 일을 할 때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어떨까?’ ‘시민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저분이 내 가족이라면 내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진심에서 나온 배려를 시민들이 알아주셨습니다. 시민들이 건네는 감사의 말 한마디가 공직생활에서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힘든 일이 끝나면 언제나 소중한 기억과 성취감이 따라왔습니다. 한 시민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공무원 중에서 가장 친절한 공무원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직급이 높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직급의 숫자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팀장이 되고 과장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소명감과 책임, 시민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아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고,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잘 챙겨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지난 공직생활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공직은 결국 사람을 향하는 일입니다” 최병숙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관통하는 한 가지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공직작로서의 책임과 기쁨"이 그것이다.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보건소 쇼파에서 쪽잠을 자던 시간도, 코로나19 확진자의 전화를 받으며 밤을 지새우던 순간도, 취약계층과 말기암 환자를 위해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던 시간도 결국은 한 사람을 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공직생활의 마지막을 앞두고 선택한 것도 다시 사람을 향한 봉사다.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태우고 성당에 가고, 복지관에서 상담을 하고, 배움을 통해 또 다른 봉사의 길을 준비하는 삶이다. 30년의 공직을 마무리하는 사람의 꿈치고는 소박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답다. 시민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걸어온 공직자의 길. 최병숙 팀장은 그 길의 마지막에서도 같은 마음을 말한다.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의 마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걸어온 30년의 공직은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곁에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