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자산, 인생 3막의 진짜 연금|김한준 박사의 신중년 인생설계 #5

  • 등록 2025.08.22 07: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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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네트워크가 만드는 중장년 경쟁력

 

퇴직을 앞둔 중장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대개 재무와 건강이다. 연금의 액수를 계산하고, 건강검진 일정을 챙기며, 남은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고민한다. 그러나 간과되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자산, 바로 관계 자산이다. 돈과 건강만으로는 인생 후반부를 버티기 어렵다. 결국 사람과의 연결망이야말로 노후의 안전망이자, 인생 3막의 진짜 연금이다.

 

문제는 이 관계 자산이 퇴직과 동시에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직장이라는 무대가 사라지는 순간,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이 함께 무너진다. 명함을 교환하고 회의실에서 마주하던 동료와 거래처는 연락이 끊기고, 휴대폰의 주소록은 어느새 무용지물이 된다. 이러한 단절은 개인의 외로움만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0세 이상 구직자의 재취업 성공률은 35%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장기 실직 상태에 놓이거나 단기·비정규직에 머무르는 현실이다. 기술 부족이나 건강 문제만이 원인이 아니다. 단절된 네트워크가 보이지 않게 발목을 잡는다.

 

관계 자산은 개인적 차원의 사교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 일본은 이미 ‘실버 인턴십 제도’를 통해 퇴직자를 지역 기업과 연결하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제도화했다. 미국은 AARP(전미은퇴자협회)를 중심으로 시니어 네트워킹 행사를 정례화하고 있으며, 유럽의 일부 국가는 ‘세컨드 커리어 페어’를 운영하여 특정 분야 전문가와 기업을 매칭한다(OECD, 2023). 이런 장치들은 개인이 홀로 연락을 이어가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사회 전체 차원에서 관계 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관계의 지속성을 사회적 장치로 제도화한 셈이다.
 


한국의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일부 공공기관이 퇴직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일자리 연계를 제공하고 있지만, 네트워크 자체를 사회적 자산으로 확장하는 정책은 부족하다. 예컨대 공무원연금공단은 사회기여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 공무원이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돕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특정 집단에 국한된 모델이다. 민간 부문까지 확산하지 않는 한, 전체 중장년층의 재취업 성공률을 높이기는 어렵다. 관계 자산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책적 대안은 세 가지 차원에서 모색될 수 있다.
첫째, 직능별·지역별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중장년이 가진 경험과 전문성이 산업별로 흩어져 사장되지 않도록, 지자체와 협회가 협력해 네트워크 플랫폼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퇴직 전–퇴직 후 연계형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재직 시절부터 사내 교육과 지역 활동을 통해 외부 네트워크를 쌓고, 퇴직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셋째, 사회기여 활동과 평생학습의 통합이 필요하다.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문성을 다듬는 ‘이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의의 활동이 아니라, 재취업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적 행위가 된다.

 

관계 자산을 개인의 몫으로만 떠넘길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는 곧 사회적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장년이 단절 속에 장기 실직으로 내몰리면, 복지 지출은 늘어나고 사회적 고립은 커진다. 반대로 이들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다시 자리 잡는다면, 경험과 지혜는 지역 공동체와 기업의 새로운 자산이 된다. 관계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제 퇴직은 개인의 종착지가 아니라 사회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재무 자산을 관리하듯, 관계 자산도 사회적 연금처럼 제도적으로 축적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인생 3막의 성패는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사회의 설계에 달려 있다. 관계를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순간, 중장년은 고립되고 사회는 잠재력을 잃는다. 네트워크는 개인이 쌓는 사교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할 자산이다. 그 다리를 끊지 않고 이어갈 때, 인생 3막은 연금보다 더 든든한 자산으로 시작될 수 있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기관, 중앙부처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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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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